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징옥의 난 (문단 편집) === 번암선생집의 기록 === >李節度澄玉者。梁山人。自少武勇絶人。兄澄石亦以力爲州里所伏。其母欲見生野豕。澄石卽日射一豕而歸。澄玉出門二日。始徒手還。母訝之。澄玉與其母出外庭。一大豕臥於場。脅息瞪目。其狀甚獰。蓋澄玉必欲令母目見生豕。跡而逐之。超山越壑。竆日夜蹴迫。必使疲頓氣盡而至於是也。每射虎。張目叱之。虎便闔眼。低首而走。金宗瑞以江界府使。知澄玉忠且勇。擧以自代。時年二十二。未幾陞拜北方節度使。璽書諭曰。卿之威武大振。雖古人無以過之。虜皆讋服。予甚嘉之。須體寡人之至意。永作北鄙之良將。以副予心。旣莅營。選六鎭藩胡驍敢善騎射者三千。皆隷牙下分爲隊。每廵列邑也。使之各出境迎送焉。光廟受禪。密遣朴好問代之。澄玉疑之曰。曾有密敎。非國有大事不召我。今佗將之匿聲來代。何也。於是捽下新節度問之。好問不敢諱。遂殺之。謀擧兵直指京師。約其麾下曰。吾渡江請命于天朝。復上王事蔑不濟矣。決以明日行。鍾城府使鄭種知其謀。是夜使人伏於板上。乘其熟睡斫右臂。澄玉驚起奪其劒。赤身飛出。左手擊殺百餘人。身亦被亂箭死之。年二十四。忠臣義士聞之。莫不暗暗流涕。光廟三年。爲冤死人招魂。設供於東鶴寺。特書李澄玉於錦城大君及六臣列。嗚呼。聖人之不以嫌害義。以勸千古爲人臣者盡心所事之忠。其意不亦宏達乎哉。 >이 [[절도사|절도]](李節度) 징옥(澄玉)이라는 자는 양산(梁山)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무용(武勇)이 보통 사람보다 뛰어났다. 형인 징석(澄石) 또한 힘으로 주리(州里)에서 탄복하였다. 그 어머니가 산 [[멧돼지]]를 보고 싶어 하였는데 징석이 그 날로 활로 멧돼지 한 마리를 쏘아 돌아왔다. 징옥은 문을 나선지 이틀 뒤에야 비로소 맨손으로 돌아왔다. 어머니가 묻자 징옥은 그 어머니와 함께 뒤뜰로 나왔다. 한 마리의 큰 멧돼지가 마당에 드러누워 있는데, 씨근거리며 눈을 부릅뜨고 있어 그 생김새가 매우 기괴하였다. 대개 징옥이 꼭 어머니로 하여금 산 멧돼지를 눈으로 보게 하기 위하여 뒤 밟아 쫒아, 어떤 때는 몰고 어떤 때는 역습을 당하면서, 산을 넘고 들을 건너면서 밤낮으로 발로 차고 협박하여 굴복시키고, 반드시 기진맥진하게 만든 다음에 발로 차서 몰고 온 것이었다. [[호랑이]]를 쏠 때마다 눈을 부릅뜨고 호통을 치면 호랑이가 눈을 감고 머리를 떨구고 달아났다. >김종서(金宗瑞)가 강계부사(江界府使)가 되어 징옥이 충성스럽고 또한 용맹함을 알고 자신의 후임으로 천거하였다. 이때 나이 스물둘이었다. 얼마 지나지 않아 지위가 올라서 [[병마절도사|북방절도사]](北方節度使)가 되었다. 새서(璽書)로 그를 효유하였다. >"경의 위엄과 무예가 크게 떨쳤으니 옛 사람이라 하여도 그보다 더하지는 못할 것이다. [[오랑캐]]들이 모두 와서 복속하였으니 내 매우 가상히 여긴다. 모름지기 과인의 지극한 뜻을 이루었다. 길이 북도(北鄙)의 양장(良將)으로 내 마음에 부합하라." >드디어 군영에 이르러 육진(六鎭)의 번호(藩胡)들로 날래고 용감하며 기사(騎射)를 잘하는 자 3천 명을 뽑아 모두 아장 아래에 나누어 예속시키고 부대로 삼았다. 열읍을 순시할 때마다 그들을 시켜서 각기 국경을 나가서 맞이하고 보내고 하였다. >광묘(세조)께서 선양을 받으시고 은밀히 박호문을 보내어 그를 대신하게 하였다. 징옥은 그를 의심하고 말하였다. >"일찍이 밀교(密敎)가 있기를 '국가에 큰 일이 없으면 나를 부르지 않겠다'고 하셨다. 지금 다른 장군이 그 온다는 소리도 숨기고 와서 나와 교대하려 하니 어째서인가?" >호문은 감히 숨기지 않았다. 마침내 그를 죽이고 모의하여 군사를 일으켜 곧장 경사로 나아가고자 하였고, 그 휘하에 약속하였다. >"내가 강을 넘어서 [[천조]]에 명을 청하면 상왕(단종)을 복위시키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. 이를 날 밝는 대로 결행할 것이다." >종성부사 정종이 그 모의를 알고 그날 밤에 사람을 시켜서 판상에 숨어서 그가 깊이 잠든 틈에 그의 오른편 어깨를 찍어 끊었다. 징옥이 놀라 일어나서 그 칼을 빼어 맨몸으로 솟구쳐올라 왼손으로 수백 명을 쳐 죽이고, 그 자신도 어지러이 날아드는 화살에 맞아 죽었다. 이때 나이 24세였다. 충신 의사가 이를 듣고 암암리에 눈물 흘리지 않는 자 없었다. 광묘 3년([[1457년]])에 원통하게 죽은 자를 위해 초혼하고 그 공양을 동학사(東鶴寺)[* 계룡산 동학사. 이곳에 사육신의 위패를 모신 숙모단이 위치하고 있다.]에서 베풀었을 때, 특별히 이징옥을 [[금성대군]]과 [[사육신|여섯]] [[생육신|신하]]의 반열에 썼다. 오호라, 성인이 그 꺼리는 바를 가지고 의를 해치지 않으심으로 하여 천고에 인신된 자에게 그 마음을 다해 힘쓰는 충성을 권하게 하셨으니, 그 뜻이 또한 멀리까지 미치지 않을 것인가. >----- >번암선생집(樊巖先生集)권55 전(傳) 이절도전(李節度傳)[[https://db.itkc.or.kr/dir/item?itemId=MO#/dir/node?dataId=ITKC_MO_0543A_0590_020_0020&solrQ=query%E2%80%A0%EC%9D%B4%EC%A7%95%EC%98%A5$solr_sortField%E2%80%A0$solr_sortOrder%E2%80%A0$solr_secId%E2%80%A0MO_BD$solr_toalCount%E2%80%A024$solr_curPos%E2%80%A07$solr_solrId%E2%80%A0BD_ITKC_MO_0543A_0590_020_0020|#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